한 가지 사건에는 이를 뒷받침 하는 열 가지 사건이 있다. 열 가지 사건 뒤에는 백 가지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충격적인 사건 하나에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빽빽한 세상의 결이 담기곤 한다. 이 소설 '액스맨의 재즈'는 실제로 일어났다는 공포스러운 연쇄살인사건을 실마리 삼아 20세기 초 뉴올리언스 거리의 결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아무래도 앨런 무어의 그래픽 노블 '프롬 헬'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끔찍한 연쇄살인 현장,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시민들의 공포, 바뀌는 시대 속의 도시가 품고 있는 특유의 역동적인 생명력과 혼돈 등 많은 소재와 주제가 동일하다. 서사 또한 비슷한 흐름을 가진다. 다만 '프롬 헬'이 '근대성' 안에 내재된 인간문명의 광기에 대한 작품이라면, '액스맨의 재즈'는 뉴올리언스 그리고 미국의 뿌리에 존재하는 혼란과 폭력성에 대한 공포와 비판, 그리고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심 가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세 방향으로 진행된다. 청렴하고 따뜻한 사람이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동료들에게 배척당하는 형사 마이클, 비극적인 은원관계로 마이클과 엮여 있는 가석방자 루카, 핑커턴 탐정 사무소의 열정 가득한 비서이자 견습 탐정인 아이다 데이비스와 그 친구 '루이 암스트롱' 듀오가 각각 한 방향씩의 흐름을 맡고 있다. 멀티 플롯을 채택하는 서사물들이 그렇듯이, 이들의 이야기도 각각 다른 지점으로부터 출발해서 자신들만의 갈등을 겪고 진실을 깨달으며 한 가지 결론으로 모여드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전략이 이 소설에서 굉장히 유효했던 이유는, 그런 다층적인 이야기와 여러 명의 주인공들이야말로 뉴올리언스라는 지역이 품고 있는 복합성을 표현하기에 굉장히 적절한 접근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경찰력 이상의 거대하고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범법집단들, 공권력의 그림자에서 자행되는 온갖 악행들, 지독한 빈부격차, 소름끼치는 인종차별, 언제 찾아들지 모르는 자연재해, 이 혼란 속에서 그 전설의 서장을 쓰고 있는 뉴올리언스의 '재즈'. 한 명의 서사로서는 담기 어려운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이 효과적으로 갈무리해 담을 수 있던 비법이다.

아쉽게도 이 책의 시작이자 끝인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수수께끼는 미처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끝이 나게 된다. 살인 사건이 허술하게 사용된 것은 물론 아니지만, 나의 취향으로서는 이 소재가 이야기의 본 궤도에 좀 더 가까웠으면 했다. 그러나 이를 좇아가며 품었던 여러 가지 의심, 그리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그 세대의 모순과 불의에 대한 분노를 한창 이어가다보면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뉴올리언스의 냄새를 보다 더 잘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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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adh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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