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평론, 또는 끄적이기. 무엇으로 불리든 간에 이 행위는 기쁨이다. 자신이 보고 읽고 느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서 나와 이야기의 돈독한 관계를 드러내고, 마지막으로는 이를 이해해주는 또 다른 친구를 만드는 과정이란 제법 즐겁다. 매니아 혹은 오타쿠는 이런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것에 대한 애착,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 열광, 때때로는 애틋한 감정까지도 포함하는 그런 것 말이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책의 작가 '닐 게이먼'은, 읽는 이를 그러한 경이감에 빠지게 하는 위대한 이야기꾼 중 한 명이다.


'신들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닐 게이먼',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샌드맨'에 대해 먼저 얘기해두고 싶다. 나는 샌드맨 시리즈를 읽고 닐 게이먼의 광팬이 되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이야기해두자면, 샌드맨은 내가 읽어 본 그래픽 노블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경이로운 작품이다. 장면 하나하나에 짙게 배어 있는 감동이란 정말이지, 충격적이다. 충격적인 감동이란 말이 정말 잘 어울린다. 닐 게이먼은 이야기를 쓰는 데 있어 동시대의 어느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 그야말로 이야기꾼 세계의 마에스트로이자 후디니면서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틀림없다는 게 나의 견해다. 어떻게 그는 이렇게 위대한 책을 쓸 수 있었을까? 그렇게 나는 다음 책들을 집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고백하건대, 사실 닐 게이먼의 신자가 되기 전에 나는 이 책 '신들의 전쟁'을 읽었었다. 2010년 여름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책이 재미 없는 계절은 언제나 여름이었다. 정확히 그 때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그렇다고 쳐보자. '신들의 전쟁'이라니! 온갖 히어로물과 전쟁과 파괴와 액션 등등을 사랑하는 20대 초(서양 나이 기준이다)의 필자에게는, 물론 도서관의 더위가 상당히 작용했으리라 유추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격하게 숨을 헐떡이게 만드는 자극적인 제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디서 들은 건 있었는지, 그 때도 닐 게이먼을 알긴 알았다. 책을 집게 만드는 완벽한 조건이 갖춰졌던 것이다. (아, 제목을 '미국의 신들'이라고 직역하기는 어려웠다는 거 이해는 합니다만... 차라리 '이 땅의 신들' 이라든지 하는 고상한 척의 제목은 어땠을지, 편집자님....)


그리고 몇 번의 연장, 기어이 연체에 이르는 활자적인 방황을 했더랬다. 아니, 도대체 전쟁은 누가 하는가, 이 신들은 맨날 입이나 나불거리고 사람들 등쳐먹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는 것인가. 어떻게 읽긴 다 읽었었고 나름대로 멋진 책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미 국민의당의 지지율처럼 허물어진 청년의 기대감이란 이 책에게 과히 좋은 감상을 남길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수줍은 과거를 뒤로 하고,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청년은, 중년은 아직 아니고 좀 더 나이 든 청년이 되었다. 매일 업무로 분투하며 야근과의 절절한 연결고리를 온 몸에 감은 채 이제는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한 가운데, 이 책. 슬며시 내게로 다시 왔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니,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었나? 페이지를 재촉하다가, 아직도 이렇게 많은 페이지가 남아있음을 기뻐하는 그 느낌을 다른 이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도대체 뭐가 달라졌기에 이랬던 것일까, 배가 조금 더 나와서 이럴 리는 없고... 역시 중요한 차이는 그 사이 몇 년 동안 '샌드맨'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아닐까?


샌드맨 타령을 멈추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이 책 '신들의 전쟁'의 진가를 알고자 한다면 '닐 게이먼'의 스타일에 대해 좀 더 익숙해져야 한다. 닐 게이먼의 소설은 현실로 파고든다. 그는 현실의 가장 구체적인, 디테일한 부분으로부터 시작한다. 실타래인줄 알고 잡았던 끄트머리는 어느덧 커다란 양탄자로 넓혀져가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이야기 곳곳에 인생의 유한성으로부터 자라난 인간 세계의 알레고리들을 장식으로 수놓는다. 특별할 것 하나 없었던 평범한 이야기들도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가장 아름답거나 혹은 가장 추한 것으로 화하며, 독자들은 슬며시 이 세계가 꾸는 꿈에 같이 잠겨든다.


닐 게이먼의 그래픽 노블들에서는 그것이 그림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활자 속에서 이 과정을 그려나가는 것은, 입문자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눈 앞에 두고 다른 책을 읽는 것도 통탄할 일이다. 당신이 각국의 신화와 그 상징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면? 제발, 이 시점에 더이상 구매를 미룰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이제 닐 게이먼의 팬이 될 당신에게 조언이나 좀 풀어주고 글을 마치려 한다.


부디 '묘사'에 집중하라. 환경이 그려내는 이야기의 마법을 믿으라. 인물을 앞세워서 빠르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방식도 멋지지만, 어떤 고수들은 배경부터가 이미 이야기를 결정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이들은 차분하게, 밥 로스의 그림처럼 캔버스를 색으로 담대하게 채우고 착실하게 디테일을 그려 나간다. 닐 게이먼은 그런 사람이다. 주인공이 던지는 동전을 가만히, 그렇지만 유심히 쳐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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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의 글에는 마법이 도사린다. 딱 한 문장만 차분하게 읽어보자. 어느새 당신은 이야기의 급류에 휘말려 있다. 언제나 그랬고, 이 소설 리바이벌에서도 그렇다.

 

그의 필력은 장르문학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그는 중편집 사계에서 이를 증명한 바 있다. 나는 아직도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영화도 정말 빼어난 명작이었지만, 소설에는 또 그에 밀리지 않는 뜨거운 감동의 이야기가 있다혹 영화와 소설을 즐기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약간 시간차를 두고 볼 것을 권한다. 설정이 일부 다르다) 그의 필력의 정수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랜 팬으로서 하나 언급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그의 인물 조형’ 능력이다.

 

이미 오래 된 저서이지만 숱한 작가 지망생들로부터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스티븐 킹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면 킹이 캐릭터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 안나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 인물을 만드세요. 그리고 그 인물을 그저 따라가세요.” 사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저렇게 쉬울 리 없지 않은가. 다만 그의 경우에는 저 말이 그대로 맞을 수도 있겠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주연과 조연을 막론하고 그야말로 살아 숨쉰다’.

 

다른 많은 스티븐 킹의 소설들이 그렇듯이, 이 소설 또한 한 명의 행위자로서, 혹은 관찰자로서의 주인공 제이미가 자신의 인생에 있었던 큰 사건을 돌이켜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정말 탁월한 선택이다. 사실 어떤 방법을 써도 킹은 최고의 소설을 쓰겠지만, 이런 방법을 택함으로써 우리는 직접 말하는 주인공을 얻게 된다. 내 머릿속에 있다고 해도 좋고, 혹은 내 앞에 앉아 있다고 해도 좋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살아 숨쉬는캐릭터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다져진 몰입감 속에, 킹은 삶과 죽음이라는 경이로운 주제를 던져 놓는다. 한 명의 로커로서, 제이미의 삶은 가장 세속적인 인간의 삶을 화려하게 보여준다. 그는 사랑에 빠지고, 하드록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고, 마약중독자가 된다. 자신의 삶을 연료삼아 그는 한없이 불타고 사라져 간다. 그런 그의 삶의 방식 너머에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다.

 

제이미에게 있어 영적인 세계, 죽음 너머의 평안을 상징했던 기독교의 교의는 제이컵스 목사의 타락 이후 완전히 무력해진다. 제이미 본인이 겉으로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제이컵스 목사와의 작별 이후 그가 걸어간 길은 결국 죽음의 공포로부터의 무한한 도피생활이었다. 가까운 이들, 자신에게 친절했던 이들의 죽음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스스로에게도 큰 부상이 찾아오는 과정을 거치며 제이미는 죽음을 잊고자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소진해간다. 죽음의 언저리에 놓인 그 때, 또 다른 이유로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제이컵스 목사가 돌아온다.

 

한 사람은 죽음으로부터의 인식적 도피를 기도하고, 한 사람은 죽음 혹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이루려고 한다. 이런 두 사람의 삶은 이리 엉켰다가 저리 엉켰다가 하면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불안하게 진동해 나간다. 마지막에 그들이 만나는 것은, 스티븐 킹 식의 공포와 러브크래프트 식 불가해적인 공포의 소름돋는 중첩이다.

 

정말로 쿨하면서도 섬뜩한 책이다. 드라마틱한 감동의 순간들 속에서, 지독한 허무감과 공포가 스멀스멀 배어 나온다. 이 책을 통해 스티븐 킹은 젊음-인생과, 하드록이 지배하던 옛날과, 무력감-죽음과,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종합적인 헌사를 완성시킨다. 필자가 하드록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스티븐 킹이 풍기고자 했던 시대의 냄새를 덜 맡은 것은 아쉽지만, 그런 무지가 이야기를 좇는 데는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의 서사는 단순하고 또한 강렬하다러브크래프트를 좋아하고 또한 스티븐 킹을 즐길 줄 아는 독자라면 본 작품도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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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hH(로랑 비네)

생각 2016. 12. 28. 00:26



역사가 울렁이는 겨울이다. 초조하게 눈치만 보던 정치인들은 부단한 준비라도 한 것처럼 굴더니, ‘탄핵’ 두 글자를 야심차게 내어놓았다. 분노와 목마름이 넘실대던 광장은 아주 조금은 더 고요해졌지만, 계속해서 터져나오는 사악함의 증거들은 아직도 뜨거운 우리들의 가슴에 얹히고 쌓인다. 분노, 배신감, 희망, 허탈함이 이리저리 교차하는 지금의 시절을 나는 어떻게 기억할까? 먼 훗날 우리의 세계를 채울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역사를 정의하는 수많은 말이 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한 가지 단어는 바로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또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


HHhH, 'Himmlers Hirn heißt Heydrich'.

'히믈러의 두뇌'라 불리던 나치의 사악한 지도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라는 자가 있었다.그는 나치 친위대 내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반대자를 제거하고 유대인들을 멸하고자 했던 악마적인 계획의 총 지휘자였다. 그는 또한 그 유능한 악랄함으로 히틀러의 총애를 받던, 나아가 후계자로 점쳐지기도 했던 군사 지도자였다. 그랬던 그가 두 명의 요원과 수많은 이름없는 이들의 노력에 무너지는 날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책 'HHhH'이다.


그 기억을 다루기 위해 저자가 택한 방식은 소설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소설은 아니다. 허구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온전히 사실에 입각한 것 같지도 않다. 보통의 다큐멘터리, 혹은 팩션과는 달리 저자가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다양한 기억과 상념들이 자유스럽게 이곳 저곳에 배열되어 있다. 저자가 그토록 공들이고 있는 역사적 재연은, 사실에 입각해 쓰겠다는 저자의 열정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 저자 스스로 밝히듯이 - 사건을 멋지게 재구성해보겠다는 소설적 욕심에 잡혔다 풀려났다 하며 갈 지자 걸음을 걷는다. 저자는 책의 후반부가 되어서야 스스로 설명한다. 이 책은 '인프라 소설'이다, 라고.('인프라 소설'이란, 옮긴이에 의하면 '실화, 가상의 내러티브, 작가의 생각이 결합된 소설'이다.)


단락은 확고하게 조직되어 있다기보다는 일기장처럼 뚝뚝 끊기고, 글을 이끌어나가야 할 화자는 계속해서 길을 잃는다. 행간에서 드러나는 고민이 아니다. 화자의 입으로 직접, 활자로 자신이 헤매고 있음이 언급된다. 마치 만화주인공이 만화를 읽는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이 책의 '화자'도 - 비록 독백 형식이기는 하지만 - 끊임없이 자기 자신 그리고 독자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이게 나-우리가 찾고 있는 것일까? 지금 이 행동이, 이 묘사가, 이런 고민이 왜 있는 것일까, 나-우리는 무엇을 향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평범한 다큐멘터리나 혹은 역사소설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이 때문이다. 저자는 '하이드리히의 암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두고 수많은 역사적 증거를 제시함으로서 그럴듯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었다. 웬만한 학자보다도 기록물을 꼼꼼히 살핀 이 답게 젠체하면서 이 글을 이끌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탄탄하게 모은 기록을 바탕으로 적당히 기교도 부리고 허세도 부리면서 독자를 감동시키는 그럴듯한 역사소설을 써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택한 것은 '기록'이 아닌, '기억하기'였다.


저자는 온갖 사실로 무겁게 짜여진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그 기록들을 보고 상상하고 의심하는데 더 큰 의미를 둔다. 때로는 기록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자신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상념에 빠져보기도 한다. 하이드리히가 탔던 메르세데스는 검은색이었나, 아니면 짙은 초록색이었나? 이러한 별로 중요해보이지도 않는 사실에 대한 상반된 기록속에서 저자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록'에 병적으로 매달리며 여자친구에게 차이는 모습을 보면서 독자는 차츰 '우리가 좇으려는 것은 무엇이었나'라는 저자의 고민에 한 걸음 가까워진다.


독자들은 그쯤 되면 느낄 것이다. 이 책, 읽기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지 지금까지의 한 장 한 장이 촘촘하게 쌓여 머릿속에서 진동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저자는 자신이 찾던 것을 발견해냈을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짧은 변명 후에 시작되는 마지막 챕터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른 독자들께서도 꼭 한번쯤 생각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어차피 기억이란 정확하지 않다. 어떤 국회의원이 말했던 것 같다. 세월호가 가라앉던 당일, 거의 모든 국민에게 그 날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라고. 나도 기억한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본 기울어진 배, 전원 구조되었다는 속보, 한참이 지나서야 나온 오보 소식, 뒤집힌 배를 보았을때의 그 멍한 감정,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를 못하겠던 그 순간들... 그것이 나의 기억이다. 그 순간을 기억한다.


바람이 유달리 강하게 불던 어느날, 깊은 새벽의 신촌 거리에서 나는 풀려나간 노란색 리본을 주워 다시 줄에 매었었다. 그 날 내가 무슨 색 옷을 입었을까, 뭘 하려던 참이었을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가브치크, 쿠비시, 그리고 그 날 그 시절의 이름없는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 많은 사실들은 세월 속에 잊혀졌고 삭제당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계속해서 '기억'될 것이다.


그 날의 체코가 그랬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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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게 재밌는 책이다. 여러가지 이 글을 시작할 말을 고민했지만, 이 말이야말로 나의 느낌을 더 잘 표현하는 말을 찾지 못했다. 두 권에 달하는 볼륨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 사실이 오히려 기쁨으로 다가온다. 책을 한 챕터씩 읽어 나갈 때마다 다음 챕터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는지.


여러 가지 사회적 담론들을 떠올리게 하던 전편의 계급의식은 일방향적인 영웅담의 흐름 속에 잊혀지는 감이 다소 있다. 레드로서 분노하고 투쟁하였던 지난 편의 아이덴티티는 대로우의 사회적 지위만큼이나 자연스럽게 골드로 치환되어, 어느새 자연스러운 귀족들의 암투 드라마 뒤에 숨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독을 머금은 대로우의 심장은 레드의 그것이다. 잊을만 하면 튀어나오는 레드로서의 자각과 골드로서의 투쟁은 대로우로 하여금 '모두에게 동등한 인간의 가치란 무엇인가'를 고민케 한다. 이러한 대로우의 고민은 거대한 태풍이 되어 돌아와 드라마의 내적 동력을 채운다.


지난 편이 체제와 소년소녀들의 투쟁을 그림으로써 '헝거 게임' 등의 작품들을 연상시켰다면, 이번 편을 읽는 내내 내가 떠올린 서사는 '왕좌의 게임'(얼음과 불의 노래)의 그것이었다. 왕좌의 게임이 우릴 열광하게 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내가 제일로 꼽는 것은 전개의 '속도'이다. 익숙한 클리셰와 연결을 위한 서사를 거부하고 수많은 캐릭터들의 목을 쳐 가면서 진행되는 전개 말이다. 이 책에는 그에 비견되는 잔혹함이 있다.


전작의 '올림포스'를 끌고 오지 않더라도 그리스-로마 문화권으로부터 차용한 인물들의 이름은 일리아스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라그나로크에 가깝다. 유사 신으로서 군림했던 골드들은 대로우를 둘러싼 음모와 전쟁 속에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쓰러져 참담하게 죽어간다.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골드들은 '인간성'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을 것인가? '라그날'으로 대표되는 하층 계급은 과연 눈을 뜰 수 있을 것인가? 틈틈이 뿌려둔 사회적 담론의 맹아들로 꼼꼼하게 빈 곳을 메꿔가며, 음모와 갈등을 연료삼아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서사에서 눈을 멈추기는 정말로 어렵다.


'레드 라이징'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야말로 올 연말 가장 뜨거운 책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렇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레드 라이징'부터 시작하는 걸 권한다. 현시대 최고의 스페이스 오페라를 접할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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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6, 7년 전쯤에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을 읽었다. 그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중문고, 즉 국방부 추천도서로 부대에 들어와 있었다. 결코 국방부의 정서와는 맞지 않을 듯 한 그 책이 추천도서에 낀 것은 담당자의 실수였을까 아니면 재치였을까.


어찌되었든 나는 '노인의 전쟁'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적당히 가볍고, 꽤나 재밌으면서, 나름대로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 책을 최고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아는 두 권의 책 때문에 눈이 많이 높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책은 '스타쉽 트루퍼즈'와 '영원한 전쟁'이었다. 


이번에 황금가지에서 재출간된 '영원한 전쟁'은 존 스칼지의 서문을 담고 있다. 재미있게도 존 스칼지는 '노인의 전쟁'을 쓴 뒤 한참이 되어서야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끊임없이 오마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을 존 스칼지의 안타까움이 이해는 되지만, 그만큼 이 책은 훌륭하다. '노인의 전쟁'이 슬며시 내비치는 데 그쳤던 반전 의식은, '영원한 전쟁'의 주제로서 수준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 책이 최고의 '反戰 SF'로 불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많은 매력이 있지만, 무엇보다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군'의 생리를 그려낸 특유의 리얼리티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이 몸소 체험해 보았겠지만, 군이라는 것은 정말로 기괴한 조직이다. 얼핏 보기에는 국민을 지킨다라는 심플하고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목적의 밑바닥에는 개개인의 욕심과 나태함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다. '국방'을 담보삼아, 이해할 수도 없고 용인되어서도 안되는 수많은 부조리가 지배하는 세상 - 그곳이 바로 '군'이다.


군대란 이 대한민국에서 유난히도 참담한 것이라고 생각했건만, 어디나 군대라는 것은 그 특유의 속성을 저버리지를 못하나 보다. 홀드먼이 묘사한 미래의 군대도 내가 겪었던 그 장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찮은 성과와 생명 사이에서 이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저울질에, 비정상적으로 뒤틀려있는 '역할'에 대한 강박감 등등 미래의 전장과 나의 경험을 연결해 주는 것은 너무나도 많다. 베트남에서 실제로 끔찍한 전쟁을 경험하며 중상을 입고 제대한 조 홀드먼이 나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과 깊은 고찰을 했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리라.


'영원한 전쟁'의 특별한 존재감은 바로 그 리얼리티, 끈적끈적하게 내 정서를 자극하는 몰입감으로부터 태어난다. 우리는 자신이 미래의 군인이 되었다는 착각 속에 짜릿한 전투의 스릴 속에 끌려들어가기도 하고, 구토감을 자극하는 지독한 회의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가며 이야기 속에서 짜여지고 있던 알레고리의 큰 그림을 보게 되는 순간, 우리는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랄맞은'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여담.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2007년도 여름, 입대를 약 8개월 쯤 앞둔 시점이었다. 두 번을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기는 했지만, 지금 이 책은 그때와는 다른 유난히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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