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샘플을 골라 주문하면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인상을 주는 인사말과 안내문이 동봉되어 온다.
우리가 본 청첩장을 전부 올리기는 조금 그렇고, 느낌만 이야기하자면...
섬세함, 안정감, 고급스러움이 이 브랜드의 테마같았다.
위의 사진 왼편의 청첩장도 사실 내가 참 마음에 들어했었는데, 종이가 파져있는 사이로 금색 빛이 감도는 것이 뭐랄까. 우아하고 부티난다고 해야하나. 그런 이미지가 청첩장들 전체적으로 잘 잡혀있다.
예시 청첩장 안에는 저런 식으로 템플릿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는데, 써 있는 내용이야 그렇다치고.
글씨체, 종이 재질 등 허술함이 느끼지 않는 정갈한 이미지인게 정말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이고...
이렇게 깔끔한 수채화 느낌의 청첩장들도 있는가 하면
독특한 티켓 형식의 청첩장도 있다. 우리의 컨셉에는 조금 맞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지만, 어딘가 쿨하고 독특한 느낌을 주는 것이... 결혼식장에 티켓을 가져온다는 컨셉도 정말 재미있는 것 같다. 약간 허술해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받아보니 종이 질도 단단하고 또 디자인도 고급스러워서 이 정도면 톤이 맞겠다 싶은 생각.
그리고 이건 좀 대박인 부분인데,
저런식으로 프리저브드 플라워를 동봉한 청첩장 형태가 있다.
프리저브드 플라워... 드라이플라워랑은 다르게, 어느 정도 생화의 질감같은 걸 보존하는 방식의 꽃장식이라고 보면 되는데, 사실 본인들이 자신있으면 직접 준비해도 되겠지만 어지간히 그 쪽에 감도 있고 아는 것도 있지 않는 이상에는 상당히 고단한 일이 될 것... 그런 의미에서 저렇게 프리저브드 플라워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격이 어느 정도 올라가기야 하겠지만, 정말 특별한 지인들, 혹은 어른들께는 저걸 드려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 부분은 마지막까지 고민해보게 될 듯...
봄카드, 우리가 참 여러 청첩장 브랜드들을 보았지만, 그 중 가장 디자인이 다채로우면서도 전반적인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청첩장 브랜드였던 것 같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지인에게 첫 번째로 권하고 싶은 브랜드.
결혼준비라는게 결국 계속 뻗어나가는 욕심과의 싸움이겠지만, 그런 욕심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파트너의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브랜드, 아크레도 (ACREDO)에서 우리 조건에 맞는 반지를 맞출 수 있어서 이에 대해 포스팅해본다.
우리가 간 곳은 아크레도 청담점.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에 내려 코앞에 붙어있는 곳이다.
마침 우리는 또 아크레도 1층을 빌려 진행하고 있던 S그룹 결혼도움행사를 거치게 되어... 여러모로 참 동선 절약을 많이 했다랄까. 어쨌든 본격적으로 반지 상담을 받기 위해 1층에서 대기하던 중에, 반지 세공하는 영상이 작은 모니터에서 나오고 있어서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기계에 넣고, 깎고, 기술자가 바라보는게 상당히 신기하더라. 그 와중에 1차 상담하시는 분께서 오셔서 마실 것을 주시고, 결혼반지 중 어떤 형태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알로에주스를 빨대로 쪽쪽 흡입하면서 설명을 듣고, 다음 상담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2층으로 안내를 받았다.
가자마자 쏟아지는 반지들...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디자인이 있었다. 말그대로 셀 수 없는 디자인들의 반지가 있었는데, 저걸 한번씩 다 봐야 한다니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치만 뭐 옷 쇼핑하듯이 편하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긴 했는데... 다행히 그게 맞았다.
자리에 앉아 상담 매니저분을 만나고, 주스 한 잔 더 얻어마시면서 설명을 들었다. 여기서 재밌는 점. 사실 난 아크레도가 한국 브랜드일줄 알았다. 알고봤더니 독일 브랜드로, 반지들은 독일에서 주문생산 후 납품된다는 점... 예상보다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기분은 좋았지만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그러나 설명을 듣다 보니 우리가 원하는 선으로 맞출 수 있겠다 생각이 또 드는 것이었다. 파트너가 슬쩍 귀띔해주기를, 여기는 홈페이지에 대부분의 디자인의 정가가 다 공지되어있다고. 웨딩 준비를 하다보면 이런저런 가격적 실랑이를 경험하는 일도 제법 있는데, 그런게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피로가 팍 감소하는 느낌. 그리고 내가 정말정말 놀란 포인트는...
(카카오 펌)
알고 봤더니 모든 반지는 커스텀 디자인...!
물론 잡혀져 있는 디자인으로 진행해도 상관은 없지만, 사람마다 손가락도 취향도 다 다른데 딱 맞춰서 고르기는 힘든 법이다. 당장 우리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으니까. 이를테면 여기서 양각이 좀 세밀해지면 어떨까, 보석 크기 조정은 안될까 이런 생각들이다. 그런데 아크레도는 아예 시스템 자체가 그런 식으로 되어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말만 해보는 방식이 아니라, 어느정도 예상 반지 시안을 그래픽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니, 이리 맞춰보고 저리 맞춰보는... 상당히 재미있는 방식. 커플링으로도 상당히 매력적인듯... 그리고 대망의 반지 아이쇼핑이 시작되었다.
기본 디자인, 혹은 초기 디자인이라고 나와있는 디자인 시안이 정말 많았다. 저 유리 상자 하나하나가 다 1~2개의 큰 테마라고 보면 되는데, 그 안에 동일 테마를 공유하는 반지들이 5~6쌍씩은 들어있던 것. 그런데 부담 하나 없이, 유리 딱 열어보고 저거 주세요, 저거 보고 싶어요 식으로... SPA 매장에서도 안해본 아이쇼핑+착용을 엄청나게 했던 셈. 이 날 우리가 껴 본 반지만 각각 사오십 개가 될 것 같다. 호화로우면서도 부담이 한 개도 없는 유쾌한 쇼핑이었달까. 심지어 보고 싶었던 반지가 너무 많아서, 우리는 세번이나 장바구니(사실은 '트레이' ^^)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거의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커스터마이징 끝에...
파트너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의 반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의 반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짜잔!
우리의 이름과 가격은 생략 ~
웨딩밴드, 앞서 말했지만 가격도, 개성도 만족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정말 염려를 많이 했지만, 다행히 좋은 브랜드를 소개받아서 편안하면서도 재미나게 골랐다. 일단 정가 정책이 마음에 들었고, 또 진짜진짜 큰 부분이지만 홈페이지의 디자인 메뉴가 정말 간편하고 참신해서 여러 결정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시착하기 전에는 확인하기 어려운 애매한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내 손에 있을 때의 반지 사이즈나 색상, 이런거는 워낙에 참고할만한 시범제품이 많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 판단하기가 수월했다(도합 90개쯤의 반지들아... 아쉽지만 다음생에 만나자^^). 제작기간은 약 두 달정도 걸리는 듯. 진짜로 기대가 된다.
어디서 언제 결혼할 것인지 날짜를 잡고서야, 그 모든 연결된 일정들에 줄을 세울 수 있다.
수많은 웨딩홀 중 어떤 곳이 더 예쁘고, 또 가격적으로 괜찮을지 고민이 많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얼마 남지 않은 날짜에 맞춰 결혼하는 사람들에게는 애초에 선택지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4개월 남긴 상황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곳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제일 맘에 드는 웨딩홀을 좋은 조건에 택할 수 있었다.
더 베일리 하우스 논현점
대략 일곱 군데 정도 되는 웨딩홀 중에서, 파트너가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곳이다.
논현역에서 도보로 2~3분? 외관부터 상당히 독특했다. 자주 봐온 컨벤션형의 다른 웨딩홀과는 다르게, 차라리 '부띠끄'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릴 것 같은 느낌? 최근 파트너와 종종 함께 시청했던 넷플릭스의, LA의 고급 저택들을 연상시키기도 했고. 나는 이번 결혼 준비하면서, 내심 평범함 속에 독특한 디테일을 갖추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면에서 일단 외관부터 합격점.
그 중 사실 파트너가 마음에 들어했던 것은 위의 가드닝 디테일이었다.
식장 바로 옆에 단정하게 가든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너무 예쁘다는 의견.
물론 결혼식 진행하는 동안에는 가든으로 나가서 거닐 수는 없다. 식 한창 진행하는데 창문 밖으로 사람들 기웃기웃하면 그것도 이상할 테니까.
그렇지만 저 정원이 안에서 비치는 것이 정말 예쁘더라.
식장은 이른바 '채플'식이라고 불리는, 교회를 연상시키는 형태.
나는 결혼식은 화려하거나 단정하거나 둘 중 하나에 몰두해야지, 어설프게 양쪽을 다 잡으려는 욕심이 애처로운 촌스러움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뭐 거창하고 화려한 것은 돈도 많이 들고, 나랑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그놈의 시국, '코로나' 때문에 하객분들 무턱대고 오시라고 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런 관점에서 파트너랑 얘기를 많이 했는데, 가급적이면 아담하고 단정한 것을 지향하자는 얘기를 했었다. 사람이 많이 차지 않더라도 휑해보이지 않는 식장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 식사도 가짓수보다는 기본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내심 '채플식'의 웨딩홀을 좀 보고 싶었는데. 마침 파트너가 여기가 정말 좋더라고 가져온 곳이 바로 이 곳 더 베일리하우스 논현점이었다.
방문 전에 유튜브와 사진으로 많이 찾아봤었는데 교회 스타일의 의자가 주는 단정함과 고급스러움이 우선 마음에 들었고, 거기에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창 밖으로 비치는 가든이 따뜻한 디테일을 더해줌과 동시에 은근한 '하우스 웨딩' 컨셉의 느낌을 던져주기도 했다.
식장이 이렇게 담백한 곳이면 작은 디테일만으로도 쉽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진행되고 있던 식을 일부 보며 '역시나 그렇다'라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일요일이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기에 뜻밖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랄까.
위에 보이는 로비에 사람들이 차 있는데, 더 베일리하우스의 장점 하나를 더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단독 웨딩홀이라는 점이었는데, 일전에 방문했던 다른 웨딩홀들이 생각났다. 강남역 근처에 있던 A 웨딩홀이나, 또 근처에 있던 B 웨딩홀. 그 장소들에서 느꼈던 것은 역시 '번잡함'. 비슷비슷하게 겹치는 시간대의 결혼이 동시에 진행되다보니, 뭐 흔히 말하는 '결혼 공장' 이런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딘가 시장통같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더 베일리하우스는 로비 공간이 넓고 동시 예식이 아니다 보니, 지인들이 좀 더 편안하게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양가 어른들께서 손님맞이하기에도 편하고, 신부대기실에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친근하게 다녀가기 좋다는 인상이 강했다.
이런저런 비주얼에 대해서만 얘기를 많이 했는데, 사실 '여기가 역시 낫다' 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신부대기실이었다.
내 개인적인 미학, 컨셉의 추구는 사실 좀 내려놓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은 파트너가 만족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 대신에 나는 웨딩홀 투어를 하면서 좀더 실용적인 부분에 주의를 집중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엘리베이터의 위치와 크기라든지, 하객들의 대기석, 신랑신부의 편의와 식 순서에 따른 동선 등등을 머릿속에 그렸다. 식이 진행되지 않는 곳에서는 상상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식이 진행되는 곳에서는 실제로 보이는 편의성의 디테일을 많이 캐치하려고 노력을 했고, 그 중 또 중요한 것이 신부대기실이었다.
신부대기실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생각에 하나다. 신부 전용 화장실/다용도실이 있냐 없냐.
이전에 방문한 웨딩홀들도 좋고, 비주얼적으로도 괜찮고, 신부대기실 뭐 예쁜 건 어딜 가나 그렇겠지만 생각보다 화장실이 갖춰진 곳이 많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 곳에 왔더니 별도 공간이 있음을(위 사진에서 왼편이다) 바로 얘기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 와중에 창 밖으로 비치는 가든이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식당은 뷔페식이다. 위치는 1층, 그리고 지하 1층 총 두 곳으로 나뉘어졌는데, 저마다의 장점이 있다고 느꼈다.
1층은 호텔 레스토랑에 온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널찍한 공간에 목재를 베이스로 한 인테리어가 고급 카페에 온 느낌을 주기도 했고,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가구거리의 상쾌함이 독특한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었다.
한편 우리가 좀 더 좋아한 곳은 지하 1층이었다. 위의 사진이 그것인데, 창문이 보이지는 않지만 아늑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비주얼적으로는 합격이고, 음식은 구글 리뷰에 의하면 대체로 괜찮다고 했다. 사실 꽤나 맛있다는 얘기도 많았고.
그런데 운좋게도 담당자께서 마침 점심시간이고 시식기회를 주신다고 해서, 배도 고팠는데 잘됐다! 하고 갔다.
뷔페의 종류는 굉장히 많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사실 파트너는 "이게 적은거야?"라는 말을 했다. 내가 너무 까다롭기 때문인지...). 어쩌면 메뉴 하나하나에 기본이 갖춰져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날 따라 스시쪽은 끌리지 않아 파트너에게 시식을 맡겼는데 회의 신선도가 나쁘지 않았고, 연어같은 경우 잘 해동되어 그 풍미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튀김, 구이류도 마찬가지. 형식을 갖추겠다고 무리해서 여러 음식을 내놓는 것보다 준비된 요리들을 공들여 제공하겠다는 느낌이 들었고, 먹어본 음식들이 모두 참 괜찮다, 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건 개인적인 부분인데, 나는 결혼식장 갈때마다 육회를 꼭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파트너의 경우 육회는 자기 취향은 아니라고 했지만, 내 경우에는 신선도 / 식감 / 고기의 맛 / 양념 모두 합격점을 줄 정도로, 대접하는 사람 입장에서 걱정이 하나도 안 되는 맛이었다. 본인처럼 결혼식장 육회매니아가 있다면... 필히 참고하시길.
주류는, 소주는 사실 못 찾았는데 맥주는 생맥주 탭이 따로 있었다. 테라였던 것 같은데 어제 테라 먹었더니 맛있더라. 술 좋아하는 친구들이 기분좋게 맥주 받아 먹기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중요한 건데, 식사를 하지 않을 경우 답례품으로 '와인'을 선물하더라.
최근에 간 결혼식에서 답례품을 내놓는 것 보고 참 좋다 싶었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부담이 많은데, 식까지 와주는 것도 감사한데 식사 안드시고 나가는 분들께 저런 식으로 답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차였으니. 그런데 또 이렇게 답례를 하는 웨딩홀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물어보면 아, 답례품은 따로 없습니다. 이런 소리 듣기도 슬슬 민망해지고 있던 상황이었고. 그런데 아까 말했던 신부 대기실 화장실까지 해서, 답례품까지 내놓는 것 보고 내심 감동을 좀 받았다. 가격이 맞는다면 정말 좋겠는데...
그런데 가격이 맞았다!
가격대야 뭐 매번 변동이 있고, 견적을 짜기 나름이겠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파격적인 안이 나와버려서...
더 이상의 투어는 돌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현장에서 계약을 해버렸다.
거기다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식대를 천원 더 할인해준다는 말 까지 들은지라, 블로깅 하기를 지지리도 귀찮아하는 나지만 덥석 하겠다고 수락을 했고, 결국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처음에는 형식적으로 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까 역시 그날 계약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정성을...
감상문, 평론, 또는 끄적이기. 무엇으로 불리든 간에 이 행위는 기쁨이다. 자신이 보고 읽고 느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서 나와 이야기의 돈독한 관계를 드러내고, 마지막으로는 이를 이해해주는 또 다른 친구를 만드는 과정이란 제법 즐겁다. 매니아 혹은 오타쿠는 이런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것에 대한 애착,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 열광, 때때로는 애틋한 감정까지도 포함하는 그런 것 말이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책의 작가 '닐 게이먼'은, 읽는 이를 그러한 경이감에 빠지게 하는 위대한 이야기꾼 중 한 명이다.
'신들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닐 게이먼',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샌드맨'에 대해 먼저 얘기해두고 싶다. 나는 샌드맨 시리즈를 읽고 닐 게이먼의 광팬이 되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이야기해두자면, 샌드맨은 내가 읽어 본 그래픽 노블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경이로운 작품이다. 장면 하나하나에 짙게 배어 있는 감동이란 정말이지, 충격적이다. 충격적인 감동이란 말이 정말 잘 어울린다. 닐 게이먼은 이야기를 쓰는 데 있어 동시대의 어느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 그야말로 이야기꾼 세계의 마에스트로이자 후디니면서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틀림없다는 게 나의 견해다. 어떻게 그는 이렇게 위대한 책을 쓸 수 있었을까? 그렇게 나는 다음 책들을 집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고백하건대, 사실 닐 게이먼의 신자가 되기 전에 나는 이 책 '신들의 전쟁'을 읽었었다. 2010년 여름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책이 재미 없는 계절은 언제나 여름이었다. 정확히 그 때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그렇다고 쳐보자. '신들의 전쟁'이라니! 온갖 히어로물과 전쟁과 파괴와 액션 등등을 사랑하는 20대 초(서양 나이 기준이다)의 필자에게는, 물론 도서관의 더위가 상당히 작용했으리라 유추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격하게 숨을 헐떡이게 만드는 자극적인 제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디서 들은 건 있었는지, 그 때도 닐 게이먼을 알긴 알았다. 책을 집게 만드는 완벽한 조건이 갖춰졌던 것이다. (아, 제목을 '미국의 신들'이라고 직역하기는 어려웠다는 거 이해는 합니다만... 차라리 '이 땅의 신들' 이라든지 하는 고상한 척의 제목은 어땠을지, 편집자님....)
그리고 몇 번의 연장, 기어이 연체에 이르는 활자적인 방황을 했더랬다. 아니, 도대체 전쟁은 누가 하는가, 이 신들은 맨날 입이나 나불거리고 사람들 등쳐먹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게 없는 것인가. 어떻게 읽긴 다 읽었었고 나름대로 멋진 책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미 국민의당의 지지율처럼 허물어진 청년의 기대감이란 이 책에게 과히 좋은 감상을 남길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수줍은 과거를 뒤로 하고,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청년은, 중년은 아직 아니고 좀 더 나이 든 청년이 되었다. 매일 업무로 분투하며 야근과의 절절한 연결고리를 온 몸에 감은 채 이제는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한 가운데, 이 책. 슬며시 내게로 다시 왔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니,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었나? 페이지를 재촉하다가, 아직도 이렇게 많은 페이지가 남아있음을 기뻐하는 그 느낌을 다른 이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도대체 뭐가 달라졌기에 이랬던 것일까, 배가 조금 더 나와서 이럴 리는 없고... 역시 중요한 차이는 그 사이 몇 년 동안 '샌드맨'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아닐까?
샌드맨 타령을 멈추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이 책 '신들의 전쟁'의 진가를 알고자 한다면 '닐 게이먼'의 스타일에 대해 좀 더 익숙해져야 한다. 닐 게이먼의 소설은 현실로 파고든다. 그는 현실의 가장 구체적인, 디테일한 부분으로부터 시작한다. 실타래인줄 알고 잡았던 끄트머리는 어느덧 커다란 양탄자로 넓혀져가며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이야기 곳곳에 인생의 유한성으로부터 자라난 인간 세계의 알레고리들을 장식으로 수놓는다. 특별할 것 하나 없었던 평범한 이야기들도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가장 아름답거나 혹은 가장 추한 것으로 화하며, 독자들은 슬며시 이 세계가 꾸는 꿈에 같이 잠겨든다.
닐 게이먼의 그래픽 노블들에서는 그것이 그림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활자 속에서 이 과정을 그려나가는 것은, 입문자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눈 앞에 두고 다른 책을 읽는 것도 통탄할 일이다. 당신이 각국의 신화와 그 상징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면? 제발, 이 시점에 더이상 구매를 미룰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이제 닐 게이먼의 팬이 될 당신에게 조언이나 좀 풀어주고 글을 마치려 한다.
부디 '묘사'에 집중하라. 환경이 그려내는 이야기의 마법을 믿으라. 인물을 앞세워서 빠르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방식도 멋지지만, 어떤 고수들은 배경부터가 이미 이야기를 결정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런 이들은 차분하게, 밥 로스의 그림처럼 캔버스를 색으로 담대하게 채우고 착실하게 디테일을 그려 나간다. 닐 게이먼은 그런 사람이다. 주인공이 던지는 동전을 가만히, 그렇지만 유심히 쳐다보라.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의 글에는 마법이
도사린다. 딱 한 문장만 차분하게 읽어보자. 어느새 당신은 이야기의 급류에 휘말려 있다. 언제나 그랬고, 이
소설 ‘리바이벌’에서도 그렇다.
그의 필력은 장르문학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그는 중편집
‘사계’에서 이를 증명한 바 있다. 나는 아직도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영화도 정말 빼어난 명작이었지만, 소설에는 또 그에 밀리지 않는 뜨거운 감동의 이야기가 있다. 혹
영화와 소설을 즐기고자 하는 독자가 있다면 약간 시간차를 두고 볼 것을 권한다. 설정이 일부 다르다) 그의 필력의 정수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오랜 팬으로서 하나 언급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그의 ‘인물 조형’ 능력이다.
이미 오래 된 저서이지만 숱한 작가 지망생들로부터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스티븐 킹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면 킹이 ‘캐릭터’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 안나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 인물을 만드세요. 그리고 그 인물을 그저 따라가세요.” 사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저렇게 쉬울 리 없지 않은가. 다만 그의 경우에는 저 말이 그대로
맞을 수도 있겠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 주연과 조연을
막론하고 – 그야말로 ‘살아 숨쉰다’.
다른 많은 스티븐 킹의 소설들이 그렇듯이, 이 소설 또한 한 명의
행위자로서, 혹은 관찰자로서의 주인공 제이미가 자신의 인생에 있었던 큰 사건을 돌이켜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정말 탁월한 선택이다. 사실 어떤 방법을 써도 킹은
최고의 소설을 쓰겠지만, 이런 방법을 택함으로써 우리는 ‘직접
말하는 주인공’을 얻게 된다. 내 머릿속에 있다고 해도 좋고, 혹은 내 앞에 앉아 있다고 해도 좋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살아 숨쉬는’ 캐릭터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다져진 몰입감 속에, 킹은 삶과 죽음이라는 경이로운 주제를
던져 놓는다. 한 명의 로커로서, 제이미의 삶은 가장 세속적인
인간의 삶을 화려하게 보여준다. 그는 사랑에 빠지고, 하드록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고, 마약중독자가 된다. 자신의 삶을
연료삼아 그는 한없이 불타고 사라져 간다. 그런 그의 삶의 방식 너머에 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다.
제이미에게 있어 영적인 세계, 죽음 너머의 평안을 상징했던 기독교의
교의는 제이컵스 목사의 타락 이후 완전히 무력해진다. 제이미 본인이 겉으로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제이컵스 목사와의 작별 이후 그가 걸어간 길은 결국 죽음의 공포로부터의 무한한 도피생활이었다. 가까운 이들, 자신에게 친절했던 이들의 죽음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스스로에게도 큰 부상이 찾아오는 과정을 거치며 제이미는 죽음을 잊고자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소진해간다. 죽음의 언저리에 놓인 그 때, 또 다른 이유로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제이컵스 목사가 돌아온다.
한 사람은 죽음으로부터의 인식적 도피를 기도하고, 한 사람은 죽음
혹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이루려고 한다. 이런 두 사람의 삶은 이리 엉켰다가 저리
엉켰다가 하면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불안하게 진동해 나간다. 마지막에 그들이 만나는 것은, 스티븐 킹 식의 공포와 러브크래프트 식 불가해적인 공포의 소름돋는 중첩이다.
정말로 쿨하면서도 섬뜩한 책이다. 드라마틱한 감동의 순간들 속에서, 지독한 허무감과 공포가 스멀스멀 배어 나온다. 이 책을 통해 스티븐
킹은 젊음-인생과, 하드록이 지배하던 옛날과, 무력감-죽음과,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종합적인 헌사를 완성시킨다. 필자가 하드록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스티븐 킹이 풍기고자 했던 시대의
냄새를 덜 맡은 것은 아쉽지만, 그런 무지가 이야기를 좇는 데는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의 서사는
단순하고 또한 강렬하다. 러브크래프트를
좋아하고 또한 스티븐 킹을 즐길 줄 아는 독자라면 본 작품도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